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들에게 납치되어 고초를 겪는 남자 이야기부터 아이의 모습으로 씨름을 거는 시바텐과 사람을 홀리는 너구리 등의 요괴 이야기는 물론 한국의 구미호 전설처럼 비밀을 간직한 여인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을 버린 난봉꾼 남편을 처절하게 응징하는 조강지처의 한 맺힌 이야기까지, 일본 괴담의 대가 다나카 고타로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 6편을 엄선하여 수록했다.
-책 속으로
그녀는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 채 분명 우는 것처럼 보였다. 미시마는 어느덧 저녁 식사 따위는 잊은 채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시마는 문득 길모퉁이에 이르러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는 왼편으로 걸음을 옮기던 차에 어느 문간이 눈에 들어왔다. 문간의 느티나무 뒤에는 철망에 싸여 둥그런 등갓을 쓴 전등이 기둥에 매달려 빛나고 있었고, 그 주변을 널빤지 울타리가 둘러싸고 있었다. 해장죽 두세 그루가 그 기둥을 따라 작은 잎을 틔우고 서 있었다. 문득 전등갓 안쪽의 검은 반점이 슬쩍 보였다. 도마뱀붙이였다. 도마뱀붙이는 먹이를 찾은 듯 목을 다섯마디나 주욱 빼고 있었다. 미시마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전등갓이 지구본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는 불길한 것을 봤다는 생각에 왼편으로 난 울퉁불퉁한 길을 잰걸음으로 꺾어 들어갔다.
다나카 고타로(1880–1941)
일본의 소설가 및 수필가. 고치현(高知県) 출신으로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중국의 학문을 통한 고전적인 사상문물을 배우는 한학원(漢学塾)을 다닌 후, 초등학교 교원과 신문기자 등의 직업을 거쳐 1909년에 다오카 레이운의 『메이지반신전(明治叛臣伝)』의 조사 및 집필을 도왔다. 이후 「중앙공론(中央公論)」의 설원(説苑)란에 연애물과 괴담을 집필했다. 작품은 크게 기행문을 포함한 에세이와 연애물의 계보를 잇는 실록물, 그리고 기담으로 나뉜다. 대표작으로는 『괴담전집(怪談全集) 』(1928)과 실록풍의 장편소설인 『선풍시대(旋風時代』 (1929~30) 등이 있다.